[한국법률일보]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노무도급을 받은 하수급인이나 프리랜서라는 명목을 내세워 퇴직금 지급을 거절했더라도, 실제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돼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아울러, 법원은 이 판결에서 대표자가 동일한 다른 법인에서 근무한 기간 역시 두 회사의 법인격이 실질적으로 혼용됐다면 계속근로기간에 합산해야 한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는 2023년 3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B씨가 대표자로 운영하는 C주식회사에서 근무하고 퇴직했으나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A씨는 관할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고, 고용노동청 조사 결과 해당 근무 기간에 대한 근로자성이 인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씨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자, A씨는 근무 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받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법률구조를 신청했다.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고용노동청 조사 결과와 A씨의 실제 근무 형태 등을 검토한 뒤 C주식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수원지방법원 오산시법원에 제기했다.
이 재판 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 노무도급 하수급인 또는 프리랜서 형식으로 근무한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 대표자가 동일한 다른 회사 현장에서 근무한 기간까지 포함해 퇴직금 산정을 위한 계속 근로기간을 산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 소송 과정에서 C주식회사(대표자 B씨)는 “A씨가 회사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상 관리·감독을 받지 않았고, 중간에 다른 회사 현장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며, “A씨는 회사 소속 근로자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하수급인에 불과하므로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항변하면서, 또한 “설령 근로자성을 인정하더라도 다른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은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A씨가 근무지를 이탈했을 때 B씨가 불만을 표시하며 근태를 통제하는 등 실제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과 종속적인 관계가 뚜렷이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A씨가 근무한 다른 회사 역시 B씨가 대표자로 있고 배우자가 회계를 관리하는 등 두 회사의 법인격이 실질적으로 혼용돼 운영되었으므로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방법원 오산시법원 박나라 판사는 “피고는 원고가 근로자가 아니라 노무도급을 받은 하수급인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원고가 피고의 근로자라는 판단을 뒤집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면서, “1. 피고는 원고에게 9,919,713원과 이에 대하여 2025. 1. 10.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3.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김건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계약의 명칭이나 프리랜서라는 형식만으로 근로자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았는지 등 구체적인 여러 조건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례다.”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어 “최근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으로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계약 형식과 실제 근로관계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프리랜서·위탁·도급 등의 형식으로 계약했다는 이유만으로 퇴직금 등 근로자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지급을 명령한 연 20%의 지연손해금은 근로기준법 제37조에 따른 것으로, 근로자가 퇴직한 날로부터 14일이 경과한 날부터 변제일까지 고율의 법정이자를 부과해 사업주의 고의적인 임금·퇴직금 체불에 엄중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이른바 ‘무늬만 프리랜서(가짜 3.3% 도급계약자)’와 ‘쪼개기 법인 운영’을 통한 퇴직금 회피 시도에 대해 법원이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는 실질주의 법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