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기업 채용 면접 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이 요청한 ‘정당한 편의 제공’을 소홀히 한 기업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장애인 차별’을 한 것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청각에 심하지 않은 장애가 있는 A씨는 2024년 12월, B법인의 채용절차에 지원하면서 온라인 입사지원서에 장애 여부를 기재했다. 이후 면접 전형에 응시한 A씨는 면접 당일 진행요원에게 자신의 장애 사실을 알리고 면접관의 목소리가 잘 들릴 수 있도록 편의 제공을 요청했다.
그러나 면접 진행요원은 “면접관과 거리가 멀지 않다.”, “면접관에게 사전 전달하겠다.”는 취지로만 응답했고, 별도의 실질적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A씨는 면접 도중 질문이 잘 들리지 않아 더 큰 목소리로 말해달라고 요청한 뒤에야 답변할 수 있었으나 결국 채용되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후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B법인에 채용절차 개선 및 장애인 차별 예방교육 실시를 권고했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만으로는 충분한 구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A씨는 결국 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신청해 소송구조 결정을 받고 전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청각장애 응시자에게 제공된 면접상 조치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 제공’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그 제공이 미흡했다면 차별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 소송 과정에서 B법인은 “면접 현장에서 부족하나마 편의 제공이 있었고, 면접위원과 A씨의 간격이 2m에 불과했으며, 큰 소리로 질문을 해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했다.”면서, “A씨의 면접 탈락은 차별행위 때문이 아니라 면접위원의 평가 점수에 따른 정당한 결과다. A씨의 손해배상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상 ‘정당한 편의 제공’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채용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라면서, “형식적·부분적 대응만으로는 법이 요구하는 수준의 편의 제공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면접절차 전반이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지 않은 채 진행된 이상, 그 자체로 절차적 공정성이 없고, 면접 점수는 역시 차별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면접 점수 자체가 차별에 따른 오염된 결과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사건은 장애인 차별을 다투는 공익적 성격의 소송인 만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소송비용 면제 등에 관한 권고를 인용하면서, “소송비용 역시 차별행위 책임이 있는 B법인이 전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전주지방법원 민사11단독 왕지훈 부장판사는 “A씨가 자신의 장애를 충분히 알리고 편의 제공을 요청했음에도 B법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했다. 이러한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하며, A씨가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이 명백하다.”고 판시하면서, “1.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300만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왕지훈 부장판사는 채용 과정 전반에서 장애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었다는 원고의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했지만, 소송비용은 소송의 경위 등을 고려해 민사소송법 제101조 단서를 적용해 B법인이 전액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이 소송에서 원고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정진백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채용면접 과정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이른바 ‘절차적 차별’ 역시 명백한 위법행위임을 확인한 사례다.”라면서, “노골적인 차별적 언행뿐 아니라, 악의없는 절차적 차별도 차별이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법원이 다시 설명해 준 셈이다.”라고 말했다.
정진백 변호사는 이어 “특히, 미흡한 배려는 배려가 아니라 차별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손해배상을 명한 사례라는 점에서 향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당한 편의 제공 관련 유사 사건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공단은 앞으로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차별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복지의 문턱을 더욱 낮추고 적극적인 권리구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