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의서 썼지만 퇴직금 포기한 적 없다”···법원, ‘깜깜이 부제소합의’에 제동
  • 대전지법 논산지원 김규현 판사, 대전지방법원 윤지숙 부장판사, 퇴직금청구소송 인용, 항소기각
  • [한국법률일보] 퇴직 후 사용자의 요구로 부제소합의서에 서명했더라도, 근로자가 포기하는 권리의 범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면 이 부제소합의는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형식적인 합의서를 앞세워 근로자의 정당한 퇴직금 청구권을 제한하려는 사업주의 관행에 경종을 울린 법률구조 사례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는 B법인에서 약 3년간 근무한 뒤 퇴직했으나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이후 B법인은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 사업주 확인원’을 제출해 A씨가 국가로부터 간이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주는 대신, A씨가 B법인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 표시 간주와 “향후 고용·근로관계에 관한 어떠한 민사소송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퇴직금 정산 합의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당시 A씨는 이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이 조항의 의미와 법적 효과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A씨는 이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간이대지급금 700만 원을 지급받았지만, 이는 실제 받아야 할 전체 퇴직금 1,230만 원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이에 A씨는 나머지 퇴직금을 청구하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신청했다.

    법률구조공단은 소송구조 결정을 하고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가 A씨를 대리해 B법인을 상대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에 퇴직금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퇴직 후 작성된 합의서상의 ‘부제소합의’조항이 유효한지, 그리고 해당 조항에 따라 나머지 퇴직금 청구권이 포기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 소송 과정에서 B법인은 “이 사건 소송이 부제소합의를 위반해 제기된 것으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하면서, 아울러 “설령 소송 제기가 적법하더라도 합의서 조항에 따라 A씨가 퇴직금 청구권을 포기했으므로 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 이 사건 합의 조항은 A씨가 처분할 수 있는 특정된 법률관계에 관한 명확한 합의로 보기 어렵고, ▶ 합의서 작성 당시 간이대지급금만으로 퇴직금 전액을 충당되지 못할 것임을 A씨가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으며, ▶ 이 사건 합의 조항은 A씨가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포괄적·추상적 합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또한 “합의서에 포기 대상과 범위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이를 근거로 나머지 퇴직금 청구권까지 명확히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 1심을 심리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김규현 판사는 “부제소합의가 유효하려면 당사자가 처분할 수 있는 특정된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합의 당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A씨가 합의서 작성 당시 대지급금만으로 퇴직금 전액의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면서, “1. 피고는 원고에게 5,305,475원 및 이에 대하여 2023. 12. 15.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3. 제1하은 가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B법인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인 대전지방법원 제3-3민사부(재판장 윤지숙 부장판사, 신일수·설승원 부장판사) 역시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보아 항소를 기각했다.

    이 소송에서 원고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심희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근로자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포괄적 부제소합의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함을 재확인한 사례다.”라면서, “사용자가 형식적 합의서를 통해 사실상 잔여 임금 및 퇴직금 청구권을 제한하려는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공단은 앞으로도 임금·퇴직금 체불사건에서 취약 근로자의 권리보호를 강화하고, 관련 분쟁에 적극 대응해 근로자의 실질적인 권리회복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
  • 글쓴날 : [26-03-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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