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법원행정처가 판결문 공개 확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개인정보유출 위험을 강조하면서, 판결문 열람 및 공개는 현행 제도로 충분하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앞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대표 김유승, 권혜진)는 김정희원 애리조나대 교수, 박지환 변호사, 송민섭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와 공동으로 6월 13일 현재 법원의 제한적인 판결문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다.
이 사건은 사안의 중대성을 인정받아 8월 19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심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피청구인이자 판결문 관리 주체인 법원도서관과 법원행정처는 9월 말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각각 54쪽과 33쪽 분량의 의견서를 통해 “판결문 속에 포함된 민감한 개인정보들의 유출 위험을 강조하면서, 판결문 열람 및 공개 확대는 불가능하며 현행 판결문 공개 제도를 통해서도 국민들의 알권리가 충분하게 보장되고 있으므로 이 헌법소원은 기각돼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법원행정처와 법원도서관은 의견서에서 ‘모자이크 이론(Mosaic Theory)’을 차용해, “비실명화된 판결문이라 할지라도 언론 기사, 소셜미디어, 관보 등 이미 공개된 다른 정보와 결합할 경우 소송 관계인을 특정(재식별)해 낼 위험이 매우 높다. 단순한 성명, 주민등록번호 삭제(비실명화)만으로는 개인정보 보호가 불가능하다.”면서, “판결문을 비실명화하는데 약 1,84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며, 현재의 담당 인력을 두 배로 늘려도 38년이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는 “판결문에 포함된 정보가 일반 공공데이터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구체적으로 ▶성범죄 등 강력범죄 피해 사실, ▶이혼·입양 등 가족관계의 내밀한 사정, ▶개인의 정치적 견해 및 성생활 정보 등이 적시돼 있어, 이것이 공개될 경우 당사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낙인과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항변했다.
법원행정처와 법원도서관은 또한 “판결서를 대량으로 공개할 경우, 법관의 판결 경향성 분석이나 직무 수행 평가 및 비교 분석, 판결 예측이 가능해지는 ‘판결서 오남용’이 우려된다.”면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는 직접 법원을 방문해 열람·복사하는 원칙적인 방식을 보완하는 ‘잠정적이고 보충적인 조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17일 논평을 내고 “이러한 법원도서관과 법원행정처의 관점은 판결문 접근의 차별과 국민의 알권리 침해를 정당화하고 있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공개’에 국민 개별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면서, “또한 법원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이고 게으르다. 개인정보의 유출에 대한 우려를 거의 유일한 핑계로 판결문의 선별적 공개, 제한적 공개를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보공개센터는 “이러한 문제는 현재의 기술력과 판결문 생산 과정의 개선을 통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라면서, “이러한 가능성들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일부 개인정보 유출 사례를 근거로 국민들에게 ‘알권리’라는 기본권의 침해와 축소를 아무렇지 않게 그저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정보공개센터는 “사법부는 현재 판결문 공개 확대를 지연하고 가로막고 있는 폐쇄적 태도를 철회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더욱 넓고 평등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판결문 공개 정책을 수립하라. 민감한 개인정보 등의 보호는 판결문의 ‘공개를 축소’하는 방향이 아닌 적절한 기술을 도입해 ‘보호를 현실화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점을 전환하라. 그리고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시민들이 요구하게 하지 마라.”라고 요구하면서, “자괴감 든다.”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향후 공개 변론 등을 통해 ▲ 재판 공개 원칙의 현대적 의미, ▲ 개인정보 유출의 실질적 위험성, ▲ 현행 판결문 공개 제도의 차별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심리할 전망이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