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1960년대 군사정권의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 중 하나인 서산개척단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 총 109명이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118억 원의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
대한청소년개척단(‘서산개척단’)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1961년 11월경부터 1966년 8월경까지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국가기관인 당시 보건사회부의 주도하에 전국의 고아, 부랑인, 연고 없는 청년 등 1,700여 명을 충남 서산군에 집단 이주시켜 강제수용 후 폐염전 부지를 농경지로 개간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감시와 통제, 감금 및 폭행, 강제노역, 강제결혼 등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한 사건이다.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들은 감금당한 채로 폭행, 강제노역, 부실 배급, 의료조치 미비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와 평생 고통을 안은 피해자도 발생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이 사건을 ‘국가기관이 국민의 인권을 총체적으로 침해한 사건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대한법률구조공단은 2023. 10. 20. 공익소송의 일환으로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와 유족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의 핵심 쟁점은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보고서의 민사소송 상 증거능력 인정 여부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도과 여부였다.
피해자와 유족을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들은 이 재판에서 “사건 피해자 및 유족들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이를 뒤집을 만한 모순된 자료가 없으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면서, “아울러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나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의 경우에는 객관적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으며, 이번 소송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통지일로부터 3년 이내에 제기된 만큼 소멸시효가 도과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민사부(재판장 김도균 부장판사, 백승영·송서윤 판사)는 2025. 9. 11. 원고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총 118억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이유에서 “이 사건 피해자들은 법률상 근거도 없이 개척단에 강제로 수용돼 노역에 동원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처럼 피고가 사회정화정책이라는 명목으로 개척단을 설립해 피해자들을 개척단에 수용하고, 강제노역을 하도록 한 행위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등을 침해한 것으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면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은 입소 기간 1일당 15만 원 토지를 가분배 받지 못한 피해자의 경우는 1일당 20만 원을 기준으로 산정했고, 일부 사망 사건의 위자료는 2,000만 원으로 정했다.
이 소송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을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윤성묵·이지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국가가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서산개척단 인권침해에 대해 법원이 배상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사례다. 위자료 액수에 아쉬움은 있지만 늦게나마 역사적 사건에 법적 매듭을 지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들의 소송을 돕고 있는 법률구조공단은 “이번 판결은 다수의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결정으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 단순한 금전적 배상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인권 보장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 중 중위소득 125% 이하인 국민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에게 발송한 진실규명 결정통지서 등 피해사실을 입증할 증거자료’와 ‘건강보험납부확인서,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하고 가까운 대한법률구조공단을 방문하면 소송 진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올해 8월 서산개척단 피해자 5명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한 것에 이어, 이번 서산개척단 피해자 109명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피해자들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해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정성호 법무부장관은 서산개척단 국가배상소송에서 항소 포기를 지휘하면서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국민들을 구제해 나가고 있다.”면서, “국민주권 정부는 피해자들의 존엄성 회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오랜 기간 지속된 고통이 하루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이번 대한청소년개척단 사건에 대한 항소 포기를 통해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국민 통합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