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오영준 헌법재판관이 7월 24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통해 공식 취임했다.
오영준 헌법재판관은 이날 취임사에서 “헌법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 헌법재판관의 자리는 제가 그 깊이와 무게감을 감당하기에 벅차다.”면서,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한 저의 다짐은 ‘헌법과 국민 앞에 헌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오영준 헌법재판관은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포용하면서 실제 헌법재판 과정에 그러한 목소리들이 현출되고 반영되는 절차가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선택과 집중, 헌법재판 심리절차의 개선 등을 통해 심리지연의 문제 해결 방안을 강구하겠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오영준 헌법재판관의 취임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김상환 헌법재판소장님, 헌법재판관님, 그리고 헌법재판소 구성원 여러분!
오늘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하는 저를 축하하고 격려해 주시기 위하여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12월 3일 위헌적인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 우리 국민들은 불의에 맞서 항거하였고, 우리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그 어두움을 걷어내는 빛의 소임을 다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과 국회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다시 한번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우리의 앞날에 드리웠던 안개는 걷히고 우리 사회는 회복의 걸음을 다시 내딛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헌법의 중요성을 체감한 우리 국민들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기대 속에 헌법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 헌법재판관의 자리는 제가 그 깊이와 무게감을 감당하기에 벅차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한 저의 다짐은 ‘헌법과 국민 앞에 헌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개인의 욕구가 다방면으로 분출하고, 성별·세대·지역·이념 등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며, 빈부 격차와 지역 간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며 그동안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여러 사회·경제·문화·정치적 문제들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헌법재판소에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사건들이 다수 제기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저는 국민주권주의, 권력분립주의, 법치주의, 대의민주주의를 신봉하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평등하다는 헌법 가치를 절대적으로 지지합니다. 이러한 헌법 규범과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헌법재판관의 사명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면서,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등을 추구하는 경제 민주화 원리와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하는 사회국가 원리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깊이 유념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우리 헌법에 면면히 흐르는 일관된 정신은 ‘치우침 없는 조화와 균형’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분열과 갈등은 이러한 헌법 규범과 가치에 따라 통합·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의사결정이므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다만 거기에 소수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고 불공정한 기준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때에는 앞서 본 헌법 규범과 가치에 따라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한민국 공동체가 조화롭게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 또한 헌법재판관의 기본적 책무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사회과학에는 ‘경로의존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 형성되었던 관행이나 제도, 법률 등에 익숙해져 이에 의존한 탓에 그것이 비효율적으로 밝혀지거나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때에도 거기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데도 과거의 관행이나 제도 등의 틀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였을 때, 그 위헌성을 지적하고 헌법 규범과 가치에 따라 새로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왔고, 이를 통하여 우리 사회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변화의 흐름 및 사회적 약자나 소수가 처한 현실과 원인에 주목하면서, 이를 어떻게 헌법 규범과 가치에 따라 수용하고 사회적 공감대 속에 해결할 것인지에 관하여 깊이 고심하겠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포용하면서 실제 헌법재판 과정에 그러한 목소리들이 현출되고 반영되는 절차가 마련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배·동료 재판관님들과의 토론과 숙고 과정을 거쳐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견해들이 헌법재판이라는 용광로 속에 녹아 들어가 우리 사회 전체의 공감을 얻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한편, 헌법재판소의 심리 지연의 문제가 여러 경로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가·사회적으로 큰 파급효를 미치는 사건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에서 생긴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건들도 신속히 해결될 필요가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인적·물적 시설의 충원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우선 선택과 집중, 헌법재판 심리절차의 개선 등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헌법재판관의 소임은 매우 중하고 그 무게감은 저의 마음을 누릅니다. 하지만 동료·선배 재판관님들과 연구관님들, 그리고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저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어느 때나 어느 곳이든지 주저하지 마시고 조언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헌법과 국민 앞에 헌신을 다짐하는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2025. 7. 24.
헌법재판관 오영준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