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에 저항하며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의 사망 후, 그의 유일한 가족인 노모에게까지 ‘소송수계신청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의 공분과 규탄 성명이 나오자, 현대자동차가 사망 노동자의 모친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고 23일 발표했다.
먼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는 23일 각각 성명을 내고 현대차의 비인도적인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의 즉각적인 개정을 촉구했다.
죽은 노동자의 유가족에게 고통 전가하는 현대자동차의 ‘민사판 연좌제’
민변 노동위원회(위원장 신하나)는 현대차의 이번 소송수계신청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마저 저버린 행위이며, 죽은 노동자의 가족에게까지 고통을 전가하려는 ‘민사판 연좌제’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사망한 노동자는 12년간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끝에 2022년 대법원에서 승소해 정규직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불법파견의 피해자인 그에게 손해배상소송을 계속 이어갔고 이제는 유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야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현대차의 불법파견으로 인해 야기된 쟁의행위에 대한 책임은 응당 원인을 제공한 현대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개인과 그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금속노조(위원장 장창열)도 현대차의 행태를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도 75세 노모에 대신 돈을 물어내라는 세상에 인간성은 존재한단 말인가. 짐승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인간이 할 수 없는 처사다.”라고 규정하면서, “기업 범죄 피해자인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도 모자라 망인의 노모를 피고로 법정에 세우겠다는 현대차다.”라고 규탄했다.
불법파견 책임 현대자동차는 솜방망이 처벌, 230억 손배소로 노동자 압박
사건의 본질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에 있는데 그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민변은 “고용노동부가 2004년 현대차 불법파견을 확인하고 검찰에 고발했으나 불기소 처리됐고, 2010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났음에도 검찰은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10년, 2012년 파업하고 사회적 문제를 계속 제기하자 2015년 처음 기소가 이뤄졌다.)”면서, “2023년 형사판결에서도 현대차와 전 공장장에게 각 벌금 3천만 원이 선고되었을 뿐이며, 검찰은 항소조차 하지 않아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반면, 불법파견에 저항한 노동자들에게 제기된 손해배상소송은 울산공장에서만 17건, 230억 원에 달하며, 일부 노동자들은 15년 넘게 소송으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심지어 현대차는 노조를 와해 시키는 수단으로 손배소를 악용해, 일부에게만 조건부 소취하를 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선별하고 분열시켰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2심 법원이 고인 등 노동자 7명에게 선고한 손해배상 원금은 6천만 원, 지연이자를 포함하면 2억3,800만 원에 달한다. 현대차가 조건부 합의에 응하지 않고, 불법파견에 저항한 이들만 선별해 청구를 남긴 노동자는 28명에 이른다. 일부는 15년 넘게 피고인으로 법정 투쟁 중이고, 일부는 법률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수십억 손배배상이 확정됐다.
국제 사회도 '보복 조치'로 규정…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민변은 “이번 사건은 노동자들에게 노조법 제2조와 제3조가 왜 개정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라면서, “기업의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권을 행사할 수 없고, 쟁의행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개인은 물론 그 가족까지, 심지어 죽어서도 소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짚었다.
민변은 “이미 UN과 ILO 등 국제사회는 쟁의행위에 참가한 노동자에 대한 민형사상 처벌을 ‘보복 조치’로 명시하고 한국 정부에 개선을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면서, “또 ILO는 정부가 노사 관계에서 사회적 대화를 저해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합원들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폭력, 압력 또는 위협이 없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민변과 금속노조는 현대자동차에 대해 “불법파견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 행사를 인정하고, 사망한 노동자의 유가족에 대한 ‘소송수계신청’을 즉각 철회하며,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모든 손해배상소송을 전면 취하하라.”면서, 또한 “20년 동안 반복된 불법파견에 대해 속죄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피해자들 앞에 사과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나아가 이재명 정부와 국회에 대해서는 “불법파견 등 기업 범죄에 엄정 대응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즉각 입법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현대자동차는 23일 오후 “손해배상소송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송수계신청이 불가피했다.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빠른 시일 안에 사망 노동자 모친에 대한 소를 취하해 종결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