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계좌 거래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보이스피싱 피해금 인출책 행위를 했다가 기소된 50대 용접공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나왔다.
창원지방법원 형사4부(재판장 김인택 부장판사, 강웅·원보람 판사)는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용접공 A씨에게 지난달 29일 무죄를 선고했다.
창원지방법원에 따르면, 오랜 기간 용접공으로 일해 온 A씨는 최근 일거리가 끊겨 대출을 알아보던 중, 2025년 1월 자신을 금융권 팀장이라 밝힌 브로커 B씨를 알게 됐다.
B씨는 대출 신청에 필요한 서류라며 신분증과 계좌번호, 주민등록등본 사진 등을 요구했고, 이후 “거래실적을 쌓아야 대출이 가능하고, 거래실적이랑 급여내역을 만들기 위해 회사 자금이 들어간다. 반도체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것처럼 거래실적을 만들어야 대출 한도나 금리가 저렴하게 나온다. 계좌로 입금되는 돈은 대출 자금이 아니라 거래내역을 만들기 위한 것이므로, 입금된 돈을 현금으로 찾아 상자에 반도체 자재 샘플인 것처럼 포장한 다음 배달 업체에 전달하면 된다.”며 A씨 계좌로 입금된 돈을 현금화해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브로커 B의 지시에 따라 2025년 1월 말 자신의 계좌로 입금된 980만 원을 인출해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했고, 이틀 뒤에는 1,470만 원을 인출해 전달하려다, 은행 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됐다.
이로써 A씨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인출책 및 전달책으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A씨와 변호인은 이 형사재판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필요한 거래실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피고인 명의의 계좌번호를 제공하고 그 계좌로 입금된 돈을 L 계좌로 다시 이체하여 출금하거나 출금하려고 하였을 뿐, 그것이 보이스피싱 범행과 관련된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편취의 범의도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창원지방법원 형사4부는 A씨에게 범죄사실을 인식하거나, 미필적으로라도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피고인은 대출을 받기 위해 계좌번호를 제공했고, 입금된 돈을 인출·전달한 목적 역시 대출 실적을 쌓기 위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면서, “만약 피고인이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된다는 점을 알았다면, 대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므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틀 연속 은행을 방문해 돈을 인출·전달할 이유가 없다.”고 설시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돈을 전액 수표로 인출하고 이를 현금으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신의 계좌와 신분증을 그대로 사용했고, 제3자에게 돈을 전달할 때도 신원이나 행적을 감추려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브로커와의 대화에서도 “3.3%는 먼저 떼고 입금이 되는 건지 궁금하다.”, “제가 하는 일이 잘되면 자주 이용하겠다.”는 등 대출 실적 쌓기에만 관심을 보였다.”면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려면 범죄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피고인의 행위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나날이 조직화하고 교묘해지는 전화금융사기의 수법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피해자들처럼 전화나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간단하게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채 거액을 편취당하는 피해자들이 양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출을 위한 거래실적을 쌓는 것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계좌에 이체된 피해금원을 인출 및 전달하는 일을 하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한편 그들이 이를 인출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불법적인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곧바로 그들이 전화금융사기의 공동정범 또는 공범의 고의를 가지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추단할 수도 없으므로, 그 공모관계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주석을 통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 사건과 같이 거래실적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계좌로 돈을 전달받아 그 돈을 인출한 뒤 제3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보이스피싱 인출책 역할에 해당한다거나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전제에서 수사와 공소제기를 하는 것으로 보이나, ‘대환대출 관련 위약으로 인한 대출금 지급정지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보증금’ 등의 거짓말에 속아 거액을 이체해 편취당하는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현실에 비추어 위와 같은 전제가 성립할 수 있는지 심히 의문이다.”라면서, “전화금융사기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후적인 수사와 처벌보다는 보이스피싱 수법 등에 관해 적극적인 대국민홍보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고 바람직할 것이다.”라고도 밝혔다.
이 재판에서 A씨의 변호는 홍재욱 국선변호사가 수행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