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을 요구한 임차인에게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한 뒤, 4개월 후 다른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대인에게 8,340만 원의 손해배상금 지급 책임을 인정한 1·2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9-3민사부(재판장 윤재남 부장판사, 선의종·정덕수 부장판사)는 임차인 A씨가 임대인 B·C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2025년 1월 피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에게 8,340만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한 1심 판결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11월, D씨 소유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에 임대차보증금 12억 원, 임대차기간 2020년 1월 10일부터 2022년 1월 9일까지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거주해 왔다.
B씨와 C씨는 2020년 12월 D씨로부터 이 아파트를 매수하고, 2021년 1월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면서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다.
이후 B·C씨는 2021년 6월 A씨에게 “임대차계약 기간 만료 시점이 다가오는데, 우리가 실제 거주해야 해서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A씨는 2021년 10월말 임차아파트에서 퇴거해 같은 단지 내의 동일 평형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런데, B·C씨는 2022년 2월경 새로운 임차인 E·F씨와 이 사건 아파트에 관해 임대차보증금 18억 원, 월 차임 110만 원, 임대차기간 2022년 2월부터 2년간으로 하는 내용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피고 B·C씨는 1심과 항소심에서 “실제 거주할 의사가 있었으나, 채권자들로부터 갑작스러운 채무변제 요구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제3자에게 아파트를 임대하게 된 것이며, 이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에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피고들은 아울러 1심에서 “원고가 계약갱신요구권을 명시적으로 행사한 사실이 없으므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고,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원고와 피고들의 합의로 중도 해지되었다.”고도 주장했다.
이 사건의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윤성헌 판사는 피고들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아파트를 임대했다고 판단하면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윤성헌 판사는 ‘정당한 사유’에 대해 “갱신거절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제3자에게 임대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을 의미하며, 이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면서, “임대인이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제3자와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금지하는 것이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에 중대한 제한이 되는 등의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으므로, 단순히 ‘경제적 사정이 급하다’는 것과 같은 사유만으로는 ‘정당한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윤성헌 판사는 피고들의 계약갱신요구권 불행사 주장에 대해서는,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 거절 의사를 확정적으로 표시한 상황에서 임차인에게 갱신요구를 기대하기 어렵다. 임차인이 별도로 갱신요구를 하지 않았더라도 임대인이 먼저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거절 의사표시를 했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의 갱신거절에 해당한다.”면서, “원고가 보증금을 6억 원이나 증액해 같은 단지 내 다른 아파트로 이사한 점을 고려하면 갱신요구를 했을 것으로 추단된다.”고 밝혔다.
윤성헌 판사는 피고들의 합의 해지 주장에 대해서도 “원고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고 퇴거한 것은 피고들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거절 의사를 표시함에 따라 이사 일정 조율을 위해 계약 종료시점을 앞당긴 것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사정이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다.”며 일축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러한 1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면서, 피고들의 항소이유가 1심에서의 주장과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특히 피고들의 채권자의 변제 독촉 시점보다 앞서 피고들이 이미 아파트 임대 중개를 의뢰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피고들의 ‘정당한 사유’ 주장을 배척했다.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에 관해서는 윤성헌 판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6항 제2호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8,340만 원으로 산정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6항은 제5항에 따른 손해배상액은 거절 당시 당사자 간에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① 갱신거절 당시 월차임(차임 외에 보증금이 있는 경우에는 그 보증금을 제7조의2 각 호 중 낮은 비율에 따라 월 단위의 차임으로 전환한 금액을 포함한다. 이하 “환산월차임”)의 3개월분에 해당하는 금액, ② 임대인이 제3자에게 임대해 얻은 환산월차임과 갱신거절 당시 환산월차임 간 차액의 2년분에 해당하는 금액, ③ 제1항 제8호의 사유로 인한 갱신거절로 인해 임차인이 입은 손해액 중 큰 금액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고들은 항소심에서 ‘갱신거절 당시 환산월차임’ 산정 시 기준금리를 원래 계약만료일의 한국은행 기준금리(1%)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법조문이 ‘갱신거절 당시’라고 명시한 점을 들어, 피고들이 원고에게 계약 갱신거절 의사를 표시한 날의 한국은행 기준금리(0.5%)를 반영해 계산해야 한다며 피고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번 판결은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무력화시킨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임대한 경우,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함을 재확인하고, 주택임대차계약 갱신요구 거절 손해배상액의 산정 기준인 ‘갱신거절 당시’의 의미와 구체적인 환산월차임 계산 방법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