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법시험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등용문’이었다. 특별한 배경 없이도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현실로 만들어줬던 시절이 있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도 어느덧 17년이 지났다. 당시 이 제도는 ‘고시 낭인’ 문제를 해소하고, 실무성과 다양성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출범했다. 필자 역시 사법시험의 폐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비현실적인 수험 환경과 비효율적 인재 선발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했고, 제도 개혁의 필요성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로스쿨은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출발선이 다르다. 2025년 현재 전국 25개 로스쿨 가운데 22개교의 합격생 80% 이상이 수도권 대학 출신이며, 이른바 SKY 대학 출신은 절반을 넘는다. 지방대학 출신은 5%에 불과한 실정이다. 형식적 개방성과 실질적 진입장벽의 괴리가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나아가, 로스쿨은 애초 지향했던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지닌 전문 법조인 양성’이라는 취지를 점차 상실하고 있다. 교육은 점차 변호사시험 합격만을 목표로 한 ‘학원형 구조’로 변질되고 있으며, 실무 중심이나 융합형 교육은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일부 학생들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수도권 로스쿨로 편입을 시도하거나 휴학을 반복하고 있고, 아예 사설 학원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로 인해 로스쿨 제도는 점점 더 ‘고시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오히려 과거 사법시험의 병폐를 반복하는 구조로 되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제도적 왜곡은 법률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맞물리며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법률시장은 확장되지 못하고, 획일화된 배경과 사고방식을 지닌 법조인들만 늘어나면서 제한된 기회를 두고 경쟁하는 폐쇄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는 법조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국민에게 제공되는 법률서비스의 품질과 접근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사법시험이 이상적인 제도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기 수험과 과도한 경쟁은 많은 사회적·개인적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러나 사법시험은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는 열린 구조였고, 비수도권이나 비명문대 출신에게도 일정한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현재의 로스쿨 제도가 그조차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면, 사법시험의 부활이나 예비시험의 전면 확대를 다시 논의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방안이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 간의 우열이 아니다.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의 제도는 실력 있는 청년들에게 실제로 열려 있는가?” 제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이상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로스쿨도 그 예외일 수 없다.
대선이 시작된 지금, 정치권이 청년, 공정, 계층 이동의 회복을 말한다면, 법조인 양성 제도 역시 정파를 넘어선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시험 제도의 존폐를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과연 기회의 평등을 실질적으로 어디까지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법조계에서 시작되는 변화의 약속이, 더 많은 국민에게 다시 한번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법무법인 대륜 박동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