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의붓아버지로부터 13년간 상습적인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으로 위자료 3억 원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됐다. 성폭력 피해 위자료 산정에 있어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창모 부장판사, 시용재·박지상 판사)는 의붓아버지로부터 장기간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A씨가 의붓아버지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달 2일 “피고는 원고에게 3억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대해 B씨가 항소하지 않아 5월 17일 그대로 확정됐다.
법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는 감정 기복이 심한 어머니의 정서적 지지 없이 성장하던 중, 2008년 여름경부터 이야기를 들어주며 지지해 주면서 다가오는 방식의 그루밍(grooming)을 통해 의붓아버지 B씨에게 심리적으로 종속되며 항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B씨는 A씨가 만 12세이던 2008년 8월경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약 13년 동안 A씨에 대해 총 2,092회에 걸쳐 친족관계에 의한 준강간, 강제추행, 유사성행위 등을 저질렀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A씨의 어머니는 큰 충격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A씨는 이러한 범행 사실을 고소했고 B씨는 구속됐다.
A씨는 이 형사절차에서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지원을 받았고, 1심 법원은 2024년 2월 B씨에게 징역 23년 형을 선고했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모두 기각 판결로 확정됐다. 이후 법률구조공단은 피해자의 권리회복을 위해 A씨를 대리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위자료 액수였다. 통상 교통사고 사망 피해자의 위자료가 1억 원 수준인 관행에 비춰, 성폭력 피해자의 위자료도 1억 원 이하로 인정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이 사건의 중대성과 장기적인 피해 상황을 근거로 고액 위자료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 재판에서 A씨의 변호사는 “B씨의 반복적이고 잔혹한 범행은 A씨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불법행위로, A씨와 그의 어머니는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면서, “A씨는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는 먼저 “피고의 원고에 대한 이 사건 범행은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로 인하여 원고가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따라서 피고는 이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는 원고의 의붓아버지로서 원고가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할 책임이 있음에도 12세에 불과했던 원고를 지속적으로 간음, 추행, 성적 학대행위 등 반인륜적인 범행을 해 그 불법성의 정도가 매우 큰 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원고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추후에도 정신적인 피해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의 친모는 정신적 충격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 점, 그밖에 이 사건 범행의 경위와 결과, 피고에 대한 형사판결에서 양형 이유로 고려된 정상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해 피고가 원고에게 배상해야 할 위자료 액수를 3억 원으로 정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A씨를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지식 변호사는 “위자료는 법원이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재량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성폭력처럼 중대한 불법행위에는 보다 유연한 판단이 필요하다.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주며, 영미법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인정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므로 우리 법원도 피해자의 실질적인 권리구제 및 예방과 제재의 관점에서 고액의 위자료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성폭력 피해자의 위자료 인정에 있어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앞으로도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적 회복과 법적 권리보호를 위해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민사 손해배상소송까지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위기 피해자에 대한 전문 상담과 연계 지원 체계를 강화해 공공 법률구조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