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범죄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형사합의서를 작성해 주면서 합의금 중 일부를 한 달여 후에 받기로 했는데, 가해자가 계속 지급하지 않자 결국 약정금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대법원까지 가서야 잔여 합의금과 그 지연손해금을 받을 수 있게 된 법률구조 사례가 나왔다.
범죄피해자 A씨는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가해자 B씨의 항소심 판결선고 전인 2023년 2월 중순, B씨에게 ‘B가 2,500만 원을 즉시 A에게 지급하고, 2023년 3월 말까지 나머지 1,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여(지연손해금 연 12%), A가 B에 대해 고소를 취하하고 B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 및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주었다.
A씨는 이 합의서 작성 당일 B씨로부터 2,500만 원을 받았으나, 나머지 1,000만 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법률구조를 신청했다.
법률구조공단은 소송구조 결정을 하고 A씨를 대리해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에 약정금 1,000만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B씨는 “A씨가 합의 내용대로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고 형사법원에 합의서나 별도의 처벌불원서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합의를 해제하고 이미 지급한 2,500만 원의 반환을 요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형사합의서에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포함된 경우, 피해자가 별도로 처벌불원서를 형사법원에 제출할 의무까지 부담하는지 여부였다.
이 재판에서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합의서 어디에도 서면을 따로 제출할 의무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면서, “합의서 자체를 형사법원에 제출하고 그로써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알리면 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소송 1심을 심리한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민사6단독 김현준 부장판사는 “이 사건 합의서의 상단에는, “원고와 피고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원만하게 합의를 이루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합니다.”라고 기재되어 있고, 하단에는 “이에 피해자(원고)는 피고인(피고)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합의서 자체를 관련 형사사건의 제2심 법원에 제출하고, 그로써 위 법원에 원고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알리면 될 뿐, 원고가 별도의 서면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 관련 형사사건의 제2심 법원은 원고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피고에 대한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아 제1심의 형을 감경했는데, 그 형은 다른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는 한 이 사건 범행에 대한 최하한의 형에 해당한다. 이는 이 사건 합의서가 관련 형사사건의 제2심 법원에 제출되었음은 물론 피고의 양형에 충분히 참작되었음을 의미한다.”면서, “B씨의 반소청구를 기각하고 B씨는 A씨에게 1,000만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소송비용은 본소, 반소를 통틀어 피고가 부담한다.”라고 판결했다.
B씨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인 춘천지방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조미연 부장판사, 배성준·허경은 판사)는 “피고의 항소이유는 제1심에서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 법원에 제출된 각 증거를 보태어 보더라도 제1심판결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면서 “피고의 본소 및 반소에 대한 항소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B씨는 항소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했으나, 이 사건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제2부(재판장 오경미 대법관, 주심 박영재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도 지난달 15일 상고를 기각했다.
이 사건에서 A씨를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정혜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형사합의서 작성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면서,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인이 없는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할 때 합의서만 작성하고 합의금은 나중에 받는 것으로 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번 사건은 법률구조공단이 피해자의 권리를 끝까지 보호한 의미 있는 사례이고, 향후에도 범죄피해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